국립 박물관 조차 없는 인쇄종주국 현실
옛 ‘주자소 터’에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
종이의 발명과 함께 기록문화의 획기적 변화를 들자면 금속활자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쇄의 역사를 논할 때는 우리나라를 빼놓을 수가 없다. 흔히 금속활자의 발명가로 서양의 구텐베르크(Gutenberg)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미 고려 고종 21년(1234)에 권신·최이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이용해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 50권 28부를 인출(印出)했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1450)보다 216년이나 앞선 기록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금속활자 기록물로 비교해도 고려 우왕 때(1377) 인출된 ‘직지(直指)’가 구텐베르크보다 70여 년 전에 인쇄된 기록물이다.
이처럼 ‘인쇄문화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러나 현재 이러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기리고 조명하는 국립 인쇄박물관이 없다.
물론 인쇄문화를 조명하는 소규모 박물관이 국내에 전혀 없지는 않다.
현재 기업이 운영하는 인쇄박물관으로는 두산동아(주)가 안산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쇄박물관을 비롯해서 (주)미래엔에서 운영하는 조치원 교과서박물관이 그것이다. 그리고 (주)전주페이퍼(구 전주제지)의 인쇄박물관 등이 우리의 인쇄역사와 문화를 조명하고 있다. 이외에 충북 청주의 고인쇄박물관과 서울인쇄센터와 문화협회에서도 인쇄홍보관 등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박물관들은 거리상의 문제, 열악한 규모와 구성 내용으로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개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거기에다 볼거리와 체험학습의 다양성이 부족해 인쇄전공 신입생에게 인쇄문화종주국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인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 공간으로는 무리라는 것이 인쇄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서울시 중구 ‘인쇄골목’에
인쇄박물관 건립 추진
이런 가운데 인쇄의 메카인 서울시 중구(구청장 최창식)에서 인쇄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일대는 ‘인쇄골목’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한민국 인쇄의 중심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을지로5가, 중부시장 맞은편에 위치한 방산시장은 ‘종합포장 인쇄타운’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종 포장자재, 인쇄, 광고물 등을 취급하는 특화된 종합시장이다.
아울러 이 일대 인쇄골목은 인쇄종사자와 도소매업자 등 유동인구가 하루 2만 명에 달하는 가운데 매일 아침부터 삼발이차와, 지게차 등이 도심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인쇄물품을 실어 나르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서울 을지로의 인쇄골목은 명성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중 하나가 주자소 터이다.
서울 주자동 5-1번지의 이곳은 조선 태종 3년(1403)부터 정조 24년(1800)까지 금속활자가 제작되던 곳으로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값으로 매기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일찌감치 인쇄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이곳 중구 관내에는 현재 인쇄사만도 무려 4,669개이며, 출판업체도 377개가 있다. 무려 5,046개사나 되는 인쇄·출판업체들이 몰려 있는 특화된 지역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에 인쇄종주국의 위상을 지닌 대한민국의 인쇄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도 없다.
이에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을지로 인쇄골목의 지역특성 인프라를 살리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으로서 가치 구현을 위해 주자소 터에 인쇄정보박물관을 건립해 글로벌 관광 명소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 구청장은 “주자소 인쇄정보박물관 건립 장소는 주자동 5-1번지 일대”라고 밝혔다. 이곳은 현재 전 도시안전본부와 교통방송 등 서울시 소유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최 구청장은 “2012년 8월에 이미 서울시를 상대로 시립인쇄박물관 건립을 건의했으며 앞으로 이와 관련된 사업들은 서울시와 적극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 구청장이 전하는 인쇄박물관 건립의 사업 추진안은 먼저 단계별로 리모델링을 실시하는 것으로, 1단계는 전 도시안전본부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000㎡ 규모로 건립하는 것이다. 또한 2단계는 교통방송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5,800㎡ 규모로 건립할 예정이다.
최 구청장은 이러한 계획안을 서울시에 건의했으며 이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에 필동 주민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향후 계획으로는 타당성조사를 위한 연구용역을 거쳐 서울시와 인쇄업계가 함께 박물관 건립설계 및 공사착공을 추진할 방침이다.
충분한 검토,
철저한 사전준비 필요
작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인쇄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친환경 고품질 인쇄 등 인쇄문화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 추진하는 것으로, 인쇄물 생산액 세계 10위, 수출 5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또 문화부는 인쇄산업 육성을 위해 친환경 인쇄기반 조성, 고품격 인쇄산업 육성, 수출경쟁력 강화, 인쇄문화 가치 확산, 인프라 구축 등 5대 전략과제를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792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와 관련 최 구청장은 “인쇄문화 사업은 지식정보사회 핵심동력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처럼 정부에서 적극 육성 지원해 나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면서 중구에서 구상·추진하고 있는 인쇄박물관 건립에도 도움을 될 것으로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