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린 시절에 동네 어귀까지 찾아와 설렘을 안겨주던 이동식 도서관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책 냄새가 가득한 그 작은 공간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창이었고,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터였다. 디지털 시대의 격랑속에서 잠시 잊혔던 그 아날로그적감성이 이제 우리의 일상 속 대중교통과 만나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있다. 바로 움직이는 도서관이다.
과거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숨은 주역이었던 인쇄산업은 디지털 미디어의 급성장으로 큰 변화의 파고를 넘고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첨단 기술에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손으로 읽는 즐거움과 종이의 촉감은 여전히 강력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지하철 역사를 활용한 움직이는 도서관은 인쇄산업에 새로운 틈새시장을 열고 사회적 이슈를 만들 잠재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매일 수많은 시민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짧게는 몇 분, 길게는 한 시간 남짓한 이동 시간 동안 무료하게 창밖을 보거나 스마트폰의 화면에 몰두한다. 이 자투리 시간을 공략하는 것이 움직이는 도서관의 첫 번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 내부의 좌석 등받이나 특정 공간에 작은 서가를 마련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 시집, 매거진, 에세이 등을 비치하는 방식이다. QR코드를 활용해 더 긴 콘텐츠나 관련도서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 서점이나 출판사와 연계해 도서구매할인 혜택을 줄 수도 있다. 이는 단순한 읽을거리 제공을 넘어, 인쇄물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쇄 업계는 휴대성을 고려한 판형의 개발, 내구성이 강화된 용지 선택, 버스 내부 환경에 맞는 디자인 인쇄 등 새로운 수요에 발맞춰 기술과 아이디어를 선보일 수 있다.다음으로 버스가 단거리 지식충전소라면, 상대적으로 이동거리가 긴 지하철은 테마가 있는 달리는 서재로 변신할 수 있다. 특정 칸을 움직이는 도서관전용 칸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칸 별로 문학, 역사, 경제,여행 등 테마를 정해 관련 도서를 큐레이션 하는 방식이다.
출퇴근길 직장인을 위한 경제 및 경영서적, 학생들을 위한 교양도서나 문학작품, 주말 나들이객을 위한 여행 가이드나에세이 등 타겟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눈이 편안한 조명의 설치, 독서를 위한 작은 테이블 마련 등 환경개선이 동반된다면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고품질의 인쇄물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책의 물성을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쇄매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정 노선이나 시간대에 맞는 특별판 인쇄, 협찬기업의 로고나 메시지를 담은 책갈피 제작 등 인쇄 업계와 창의적인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는 ‘움직이는 도서관’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을 넘어서 인쇄문화를 체험하고 소통하는 ‘허브’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역사내 유휴공간이나 폐쇄된 매표소등을 리모델링하여 미니 도서관이나 북카페를 조성하고, 최신 인쇄 기술로 제작된 서적, 독립 출판물, 디자인 인쇄물 등을 전시 및 판매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급하는 것을 넘어, 인쇄산업 자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잠재력이 크다. 어린 시절 독자들을 설레게 했던 이동 도서관의 추억처럼,이제 버스와지하철이 움직이는 도서관이 되어서 다시 한번 시민들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향수를 되살리는 것을 넘어서 디지털 시대 속에 인쇄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인쇄 산업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움직이는 도서관이 시민들의 일상에 즐거운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