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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용하는 인쇄…연결하면 시너지 나와 - 직지, 세계최초 금속활자 자부심 - 구텐베르크에 비해 영향력 미비 - 타 산업과 연결하고 발전하자
  • 기사등록 2025-04-24 15:44:11
  • 수정 2025-04-28 09: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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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산업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처럼 타 산업과 연결하고 발전하면서 틈새시장도 개척해야 된다는 지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사진은 세계최초 금속활자 직지).



우리나라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직지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다. 인쇄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에 비해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라면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서양에서는 금속활자 인쇄술에 대해서 대단히 높게 인정한다. 일례로 미국의 시사 주간지 라이프지난 천 년간 인류사에서 중요한 100가지 발명품1위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꼽았다. 또 역사전문방송인 히스토리채널에서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천년을 빛낸 세계의 100가운데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이전에 책이라고 하면 대부분 직접 보고 베낀 필사본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당시 책은 소수 지배층의 특권과도 같았다. 때문에 지도층이 독점했던 지식정보를 일반인들에게도 급속도로 전파한 것이 금속활자 인쇄술이었고 덩달아 계몽이 가능해졌다.금속활자로 책을 간행하여 지식을 보급함으로써, 정보의 대량전달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축적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인쇄술에 의해 지식과 정보가 대량으로 복제되고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대중들의 힘과 목소리는 커졌다.


활자인쇄, 다양한 연결로 더욱발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친 데는 문화를 축적하고 타 산업과 연결하고 활성화 했다는데 있다. 당시 금속활자 인쇄는 성경을 시작으로 서적 인쇄의 보편적인 방법으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와 맞물려 각종 번역과 간행사업이 전개되었고, 대학들이 생겨나면서 서적의 수요와 창출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크게 번창하게 되었고, 당시 경제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우리나라 인쇄문화는 이보다 빠른 8세기 중반부터 목판 인쇄를 통해 불교 경전이 대량으로 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꽃을피웠다. 당시 유럽에서는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필사본 시대를 완전히 종결시키고 정보의 대중화를 촉진하는 혁명을 가져온 반면, 우리나라는 이미 목판 인쇄 기술로 대중적 정보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어 금속 활자가 큰 사회적 변혁을 촉발하지 못했다는게 이유다.

하지만 서양의 금속활자는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을 이끌었고, 이어 산업혁명과 근대 자본주의,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으로 1, 2차산업혁명이 가능했다는 분석이지배적이다. 산업혁명의 역사는18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1차는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화 혁명, 2차는 전기 에너지 기반의 대량생산 혁명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인류의 정보혁명 즉 금속활자라는 것이다. 인쇄술이 없이는 정보나 데이터의 축적이나 전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금속활자 기술이지만 서양과 우리나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현재 인쇄산업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인쇄기술 하나만으로는 이 위기를 돌파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후방 연관효과 산업이고 자체 시장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 산업과 연결하고 발전하면서 틈새시장도 개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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