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과서 둘러싼 논란
일본도 종이교과서 중시의견
교육부가 추진하는 AI디지털교과서(AIDT)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기에 학교 현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교육부는 올해부터 AI디지털교과서를 의무적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야당 중심으로 AI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반발한 정부가 재의 요구권을 발동해 교과서 지위는 유지되는 상황이다.
이에따라 지난달 교육부가 AI디지털교과서 도입 방침을 기존의 의무 선정에서 자율 선정으로 변경하면서 각 시·도 교육청에 안내한 지침을 내리고, 일선 학교에 통보됐다. 각 학교는 구성원과 협의를 거쳐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교사들의 활용 준비 부족, 학부모들의 우려 등으로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더욱이 교사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한다. 찬성 측은 AI디지털교과서가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학습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아직 AI디지털교과서가 사전에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아 학교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학교가 AI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려면, 교과협의회에서 교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선정 심의안을 작성해야 한다. 이후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논란중인 디지털 교과서
이런 가운데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기기 의존도 심화와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미래 교육의 필수적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디지털교과서를 먼저 도입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오히려 아날로그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 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일본의 교장들도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10년대에 학교 수업에 디지털 기기를 도입한 스웨덴과 핀란드 등은 학생들의 문해력과 사고력 저하 등을 이유로 폐지나 축소로 방향을 전환했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해 2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주의와 집중, 읽기, 쓰기, 산수 같은 기본 학습 능력은 아날로그 활동을 통해 가장 잘 습득된다”면서 디지털화의 중단을 선언했다. 같은 해 6월엔 유치원의 디지털 기기 사용 의무화를 폐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핀란드 정부 역시 지난달 30일 수업 중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의 학교 기본 교육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앞서 핀란드 남부 도시인 리히매키에선 학부모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중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를 종이책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특히 스웨덴은 학교장 및 교사 재량권이 높아 디지털 도구 사용 여부는 학교별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분위기임을 고려할 때 디지털교과서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아울러 유럽에서는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학교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디지털 디톡스’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이 청소년들의 집중력과 학습 능력 저하, 그리고 독서량 감소로 이어진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과도한 영상 매체와 소셜미디어 사용이 깊이 있는 사고와 문해력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도 학교장들 종이교과서 선호
이웃나라 일본 정부도 디지털교과서 전환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일선 학교에서는 종이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전국 초·중학교 교장 188명에게 ‘종이교과서와 디지털교과서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야 하는지’를 물은 결과 95.1%가 ‘종이 교과서를 함께 써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교과서 장점으로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종이 형태 교과서가 더 효과적”이라는 답이 나왔다. 유럽등과 비슷한 맥락으로 종이교과서의 장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종이 교과서는 언제든 손쉽게 반복해 볼 수 있어 이해와 학습 방식 정착에 장점이 많다”고도 했다.
또한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전환에 대한 우려가 있냐’는 물음에 ‘있다’, ‘어느 정도 있다’는 응답이 90.1%나 돼 디지털교과서의 전면 사용에 상당한 우려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현장에서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학생들의 이른바 ‘딴짓’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교실 현장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수업 중에 게임을 하거나 공부와 관련 없는 검색을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학습용 이외에 다른 작업이 불가능하도록 제한을 걸어놓지만 학생들이 태블릿 조작에 능숙해 무용지물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기술적인 문제, 예를들면 학습 기기의 작동이 멈추거나 통신에 문제가 있는 경우나 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학습용 단말기 분실과 파손문제 등도 해결해야할 현안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존 종이 교과서를 교육현장에서 주로 활용하고 디지털은 보조교육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 보도에 따르면 일본 국립 종합대학교 교육정책학교수는 “교과서는 종이를 중심으로 학습에 이용하고 디지털은 보조적으로 쓰는 게 적절하다”면서 정부의 신중한 판단을 당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