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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1-26 11: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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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전에는 인쇄의 중심에는 옵셋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흑백에서 컬러화로 전환되면서 옵셋의 파워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고 시대변화는 새로운 영토, 새로운 분야를 탄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속에 인쇄 본질로 등장한 것이 레이벌이다. 레이벌은 처음부터 레이벌이 된 것이 아니다. 많은 과정이 있었고 흐름이 있었다. 처음 레이벌은 씨링에서부터 시작한다. 물론 우리보다 선진화가 앞선 일본의 영향들이 컸다. 용어는 물론 설비까지 전부 일본식이었다. 

그런데 세계화가 보편화되고 인쇄인의 의식수준과 교육수준들이 향상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영향권에도 차츰 가까워졌고 또 다변화 됐다. 과거 설비들은 일본중심의 씨링기, 프레스기, 레터프레스가 전부였으나 플렉소가 등장했고 디지털설비들도 나타났다.

인쇄 용어역시 전환기를 맞았다. 씨링에서 스티카로 옮겨졌고 다시 스티커가 됐다. 그런데 역동성이 활발하고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용어도 글로벌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또 미국중심이냐 일본중심이냐 중국중심이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났다. 

교육과 생활, 문화적 가치 수준이 비슷하고 친밀감이 높은 미국식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라벨이 가장 적합했다. 물론 일본의 씨링, 중국의 상표도 있었지만 라벨의 파워에 대응하기란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리드하는 기관들이 있다면 본보가 핵심이었다. 본보는 용어정리부터 활용까지 앞서 나갔다. 세계화에 초점을 뒀고 다변화에 역량을 결집시켰다. 또 언론이란 보도의 기능, 지도의 기능이 있고 의제설정기능까지 있어서 언론이 먼저 사용하여 표준화를 주도하면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언론의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확실한 우리의 영토를 만들고자 라벨에서 레이벌로 전격 변경했다. 업계 유일의 단체인 한국레이벌인쇄협회도 이런 취지에서 단체명이 변경됐다.

레이벌로 오기까지 세계인쇄시장을 선도하는 영국의 탈서스사의 자문도 구한것도 현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차별화와 전문화, 특성화도 시도했다.

바코드도 라벨, 의류용 상표인쇄도 라벨, 모든 상품이 라벨로 통하는 현실에서 탈피하여 인쇄를 통한 상품은 레이벌이 가장 적합하고 글로벌화에 부합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것이 있어야 우리만의 고유 독자색깔이 있어야 산업으로의 고유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레이벌인쇄는 현재 전국에 걸쳐 1천8백여 개 사가 있다. 또 생산 규모는 1조원에 이르고 있다. 물론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 수도권에 60%가 분포돼 있다. 

기술을 개발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상생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레이벌인쇄산업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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